1. 일제강점기 이전의 지역사회복지
한국의 전통적인 지역사회복지 활동은 국가나 군현 단위의 행정적인 복지사업과 부락 단위의 민속적인 협동사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가 단위의 지역복지사업은 의창, 상평창, 진휼청 등 상설복지기구를 통해서 주로 시행되었고, 촌락 단위의 복지사업은 두레, 계, 품앗이, 사창, 향약 등을 통해서 전개되었다. 특히 삼국시대 촌락 협동적인 활동인 두레, 계, 품앗이 등은 오늘날에도 자취가 남아 있을 정도로 서로 영향을 미치고 복합적·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의창은 흉년이 든 해에 기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양곡을 저장·보관해 두었다가 흉년 시 무상 구제했던 복지제도였다.
상평창은 빈민에 대해 곡물을 대여하고 상환의 의무가 주어졌던 제도이다. 저렴할 때 생필품을 관에서 사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저가로 다시 팔아 백성의 경제생활 안정을 도모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국가기관으로 진휼청이 있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 시작하였다.
두레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각지에 있던 단순한 형태의 민간 협동체 가운데 하나로, 촌락 단위로 조직되어 촌락의 일을 공동으로 하는 협동조직체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농업에 기반을 둔 촌락사회였기 때문에 두레도 역사가 길다. 두레는 공동노동일뿐 아니라 농사를 하는 중간에 공동으로 놀이를 즐기는 행위이기도 했다. 두레 조직은 농촌에 대한 외부경제의 침투 과정에서 내부 질서가 해체되면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농촌사회의 자치와 협동의 제 영역에 걸쳐 잠재적인 역할을 미치고 있다.
계는 한국 사회 특유의 조합적 성격을 지닌 협동조직으로 상부상조를 위해 주민들이 단결, 협조하는 제도이다. 민간적 차원에서 불행을 당하거나 큰일을 치르고자 할 때 사전에 주민들 간에 상부상조하는 관행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살아가는 생활 방법인 것이다. 마을 안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직화된 이웃 돕기 조직인 셈이다. 자생적 조직으로서의 계는 계원의 수, 목적, 기능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종류가 존재하였으며 복지와 관련된 공제를 위한 계로 혼상계, 군포계, 양로계 등이 있다. 대부분의 계 조직이 부락주민들의 전통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생성되었고 오늘날에도 그 형태나 방식이 변형되어 있지만 친목과 공제적 목적으로 민간 차원의 계 조직이 형성되고 있다.
품앗이는 우리나라 농촌의 가장 대표적인 노동 협력의 형태이다. 이웃에 '품'일을 해주고 필요할 때는 '품'을 되돌려 받아 서로 간에 품앗이하는 부락 내 농민들이 노동력을 서로 차용 또는 교환하는 조직이다. 이는 노동 협력 이상의 정신적 교환의 의미도 내포하며, 사회 윤리적인 원리와 사회 공리적 질서의 조화를 의미함과 동시에 임의적·비타산적 협력에 구속적·이익적 성질을 부여한 것으로, 소농 구조 아래의 농민사회가 자조적으로 복지향상을 이룩하려는 협동체계라고 볼 수 있다. 두레와 품앗이의 차이는 노동조직의 규모나 노동의 성질 측면에서 두레는 공동작업이나 공동노동이 공동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품앗이는 이익 사회적 성격을 띤다.
향약이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주민들의 순화·덕화·교화를 목적으로 한 지식인들 간의 자치적인 협동조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계, 두레 및 품앗이가 촌락사회의 자연발생적인 협동 생활 형태라고 한다면 향약은 이들보다는 늦게 시작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주민들의 순화·덕화·교화를 목적으로 한 행정책임자 및 당대의 지식인들 간의 자치적인 협동조직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순전히 민간 자치적인 상부상조의 활동이었다.
사창은 재앙이나 흉년을 대비하여 미리 향민에게 곡식을 징수 또는 기증받아 저장해 두는 촌락 단위의 구휼제도이다. 이 시기에 국가에 의한 구제 사업은 관곡을 내어 빈민이나 이재민을 구제하는 삼창 등이 가장 대표적이었는데, 이때 사창은 의창, 상평창과 더불어 삼창의 하나였다. 사창이 촌락 단위로 자치적으로 행해지면서도 국가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민간 지역사회복지 활동과 유사하다. 이처럼 향약과 사창은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었다.
오가통은 정부에 의한 강제성을 지닌 인보 제도로 재력의 빈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인접해 있는 다섯 가구로 일통을 편성함을 원칙으로 하고 남는 기구가 있을 때에는 적당히 인접한 통에 첨부하였다. 그 구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성원이 인보 상조와 연대한 책임의 과념으로 자기 지역 내의 치안을 유지하고 복리를 증진하고 교화를 향상하여 지방행정의 운영을 돕게 하는 지방자치제도였다. 이는 지역의 질서, 유지, 주민의 동태 파악 등 오늘날의 반·통조직과 유사한 점이 많아 지방행정의 편의를 도모 및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2. 일제강점기의 지역사회복지활동
일제강점기에는 선진화된 사회복지 활동이 들어왔고 조선구호령과 같은 사회복지 관련 법령이 제정되기는 하였지만 근대적인 복지이념에 의해 시행되었다기보다는 일제의 식민정책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식민 통치로 인하여 오랫동안 내려온 자생적 복지 활동이 위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새로운 행정제도나 교육제도가 생겨나면서, 그리고 일제에 의해 재래의 민간 협동단체가 한민족의 민족적 단결을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붕괴당했다. 예를 들어, 동리계는 부락의 자치단체였으나 읍면 제도 등 새로운 행정제도의 실시와 행정기구의 정비로 자연 해체되었고, 교육사업체인 하계 및 항계는 학교 교육제도의 실시로 서당이 폐지되면서 소멸되었다. 이처럼 일제의 식민정책은 전래의 민간 협동체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는데 그것이 각종 신제도의 실시와 상충하거나 혹은 실효성이 쇠퇴함에 따라 점차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것이기는 했으나, 한민족의 민족적 단결을 붕괴시키기 위한 식민지배자들의 의식적 노력의 결과로 더욱 촉진되었다.
그러나 일정의 강압하에서도 민중운동은 꾸준하였다. 지역개발과 관련된 이와 같은 운동의 예는 민간 협동조직 운동이다. 상부상조를 통하여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고자 하는 자기 방어적 자주 조직이었다. 유학계, 천도교계, 기독교계로 세 계통의 민간 주도 협동조합 운동으로 협동조합 운동사, 혹은 농민사 운동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거나 운영 자금난으로 크게 발전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사회복지 부서가 시작되었고 사회복지 시설로 육아 시설, 빈궁아 교육 기관 등이 설립되었다. 1927년에는 방면 사업이 도입되었고, 1941년에는 방면위원 제도가 도입되어 요보호자들에 대한 보호, 구제, 직업알선 등의 케이스워크 활동이 있었으나 실은 조선인에 대한 감시활동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 최초의 인보관은 1906년 미국의 감리교 여선교사였던 메리 놀스(Mary Knowles)가 원산에 6평 정도의 초가집을 구입하여 설립한 반열방이다. 그리고 1921년 메리 마이어스(Mary D. Myers)에 의해 설립된 태화여자관도 있었다. 일제도 방면위원 제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인보관을 설립하였다. 일제가 설립한 최초의 인보관은 1927년 종로에 세운 동부 인보관이었다. 그 후 5개의 인보관이 설립되었다. 일제의 인보관은 생활지도, 직업소개, 생활 자금 대부, 개인 상담 등의 사업을 실시하여 질서유지나 지배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통치의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