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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역사회복지 역사 1 : 대공항 이전, 지역사회보호의 태동기

by ilove3boys 2025. 1. 31.

1. 대공항 이전 시기

이 시기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로 초기 지역사회복지의 태동기라고 불린다. 영국은 흔히 근대 지역사회 효시로 일컬어지는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 운동을 19세기 말엽부터 가장 먼저 시작한 국가이다. 

  자선조직협회는 19세기말 산업혁명 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 빈민 문제(실업, 범죄, 질병, 비위생적 환경 등)가 확산되고 이에 대한 많은 민간자선단체들이 생겨나 도시빈민에 대한 민간 차원의 자선사업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각종 자선활동이 통일되지 않아 활동 기관 간에 대립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고, 수혜자들의 중복과 누락 현상이 야기되고, 훈련받지 않은 담당자들에 의해 수행된 활동 때문에 자선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되어 새로운 자원의 확보를 위한 공공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초의 COS는 1869년에 당대의 유명한 낭만주의 예술가였던 러스킨 조직화해서 빈민에 대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호사업을 전개함으로써 구걸을 방지하여 빈민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자선조직협회는 빈민 구호보다는 빈민에 대한 통제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자선의 오용과 남용을 막는 것 외에도 빈민들의 의존 문화를 근절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빈민들의 의존 문화를 근절하고 이들이 근면하도록 성격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자선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남용되지 않고 지원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호신청자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가정방문 활동을 하는 우애방문원 활동이 주축이 되었다.

  자선조직협회의 주요 이념은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진화론에 근거하였다. 따라서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나태함에서 찾는 개인주의적 빈곤관을 취하였고, 개인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문제의 해결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빈민의 도덕성을 향상하기 위해 단순한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애방문원들이 가정을 방문하여 자선 조사, 사례연구 등을 수행하였고, 빈민에게 근면, 절제, 절약을 가르치고 도덕성을 향상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자선조직협회는 구빈법에 기초했기 때문에 빈민을 가치 있는 빈민과 가치 없는 빈민으로 구분하여 가치 있는 빈민에게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선의 오남용을 막고 빈민들의 의존 문화를 근절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인보관 운동은 자선조직협회가 사회경제적인 기회와 조건이 빈민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거의 무시하고 빈곤의 원인을 개인적인 성격 결함에서만 찾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거주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인보관 운동이 전개되었다. 

  인보관 운동의 활동가들은 빈곤을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사회문제의 산물이자 환경적인 문제로 보았다. 최초의 인보관 가운데 하나인 토인비 홀은 영국 성공회의 사제 바넷에 의해 1884년 런던의 유대인 빈민가에 세웠다. 바넷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들에게 빈민 지역에 들어와 빈민들과 함께 살면서 사회개혁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주로 활동한 사람은 대학생과 종교인, 지식인들이었다. 이처럼 인보관 운동은 3R 활동, 즉 함께 거주하면서(Residence), 빈곤의 원인을 연구하여(Research), 사회의 개혁을 도모하고자(Reform) 하였다. 

  이를 위해 COS 활동가들과 달리 빈곤 문제를 지역사회의 맥락에 접근하였다. 즉, 자선조직협회 활동가들이 빈민과의 개별적 접촉을 기피하고 빈민들을 선도의 대상으로 여긴 것과 대조적으로, 인보관 운동가들은 빈민과의 개별적 관계를 중시하였고 그들의 이웃과 동료로 접근하였다. 빈민들의 생활 조건과 사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빈민들에게 교육하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였고, 사회문제, 건강 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30개의 인보관이 영국 곳곳에 세워졌다. 그러나 영국의 인보관 운동은 국가가 사회복지를 책임지게 되면서부터 그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영국 인보관 운동

2. 지역사회보호의 태동기(대공항~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

  이 시기에 영국 지역복지의 중심적 서비스인 지역사회 보호 서비스가 태동하게 되었다. 지역사회 보호는 영국에서는 구빈정책의 일환인 시설수용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당시 빈민 수용시설인 구빈원은 일반 시민들의 거주환경과 삶으로부터 격리된 환경이었으며, 동시에 열악하고 비인도적인 환경이었다.

  '시설로부터 지역사회'라는 새로운 접근방법의 개발과 실천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루어졌다. 1950년대 이후 수용시설보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확산되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의 가정이나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러한 지역사회 보호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보호하고 치료하는 탈시설화를 위한 영국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지역사회보호 정책의 주요 목적은 가능하면 개인이 자신의 집에서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정책적으로 도덕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선택을 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리고 비용적으로도 더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영국의 지역사회복지는 공공부문의 지역사회 보호를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1956년 Guilbaud Committee Report에서는 "사회정책은 노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적합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재가 서비스의 개발은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인본주의적 수단이며 경제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역사회 보호 정책의 근간을 마련하였다.